[철학] 세 가지 범주의 정치적 자유

반응형

방학이 끝나가서 슬퍼하는 대학원생입니다

무려 다음학기부터 1학년 철학 수업을 가르쳐야해서 강의계획서를 만들면서 계속 리딩하고 있는데

역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 아닌 게으른 동물이라 제가 세운 계획의 30프로 정도도 못한 것 같네요


원래는 따로따로 나눠서 강의노트식으로 준비해놓으려고했는데 다시 책 펴고 읽기 귀찮아서

그냥 제가 이해한 걸 한 번 정리해볼 겸 해서 썰 풀듯이 적어보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블로그 읽는 느낌 정도로 읽어주시길!


-------------------------------------------------------------------------------------------------


철학의 여러 개념들 중에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논의되는 개념들 중 하나가 바로 자유 개념이 아닐까 합니다

자유에는 여러 종류의 자유가 있겠죠 제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는

결정론과 대비되는 자유의지에서 말하는 자유, 즉 (도덕적) 선택의 자유

그리고 정치의 영역에서 국가와 관련해서 개인들이 갖는 상태로서의 자유,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이 짧은 썰에서 얘기할 건 두 번째 종류의 자유, 즉 정치적 자유입니다

정치적 자유는 보통 두 종류로 나눕니다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와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인데요

보통 소극적 자유란 '~으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라고 하고, 적극적 자유란 '~를 할 자유 (freedom to)라고 합니다

이 구분을 널리 퍼뜨린 사람은 벌린(Isaiah Berlin)이라고 20세기 중반에 자유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에서 누리는 자유를 구분하면서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자유의 구분을 좀 더 개념적으로 명료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여기에 20세기 후반에 흔히 말하는 신공화주의(neo-republicanism) 사상이 발전하며 공화주의적 자유라는 제 3의 자유 개념이 들어옵니다

각 개념들을 순서대로 살펴보죠


1. 소극적 자유

소극적 자유에 대해선 지난 번에 올린 홉스에 관한 글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건, 비록 우리나라는 자유주의 전통이 없지만, 서구권은 자유주의가 기본에 깔려있는데, 그 자유주의의 핵심이 바로 소극적 자유라는 겁니다

소극적 자유와 공화주의적 자유에 모두 연결되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간섭(intereference)입니다

내가 간섭받지 않을 때, 나는 자유롭다는 생각이 바로 소극적 자유의 핵심이고, 바로 그러한 자유의 주체는 공동체나 국가가 아니라 바로 개인이라는 개인주의가 자유주의의 핵심 관념인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구권 국가의 시민들이 자신의 자유에 국가가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를 약간은 이해할 수도 있겠죠


2. 적극적 자유

적극적 자유의 핵심을 하나만 짚으라면, 특정한 삶의 방식 또는 특정한 가치가 옳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게 살 때에만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소극적 자유와 구분되는 지점은 바로 어떤 가치가 옳은지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게 아니라, 국가가 정해놓는다는 점이죠

따라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상당수의 사상들은 넓은 의미로 적극적 자유와 연결될 수 있겠죠

가령 유교 같은 경우도 특정한 삶의 형태 (충, 효, 예 같은 것이 옳은 가치라는 전제 하에서 꾸려지는 삶의 형태)가 옳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만약 유교적 자유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적극적 자유의 한 형태가 되겠죠

벌린의 경우를 보면, 그가 두 자유를 구분했던 시점은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소련이었죠

사회주의적 삶의 방식은 개인에게 불가침의 권리를 주고 각 개인들의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하는 자유주의 진영과 달리, 구체적인 삶의 형태 (가령 경제적 삶의 경우는 공산주의)를 따로도록 했기 때문에 적극적 자유의 한 예시가 될 수 있겠죠

그러면 서구자유주의 국가들은 적극적 자유를 전혀 추구하지 않느냐 물을 수 있겠죠

즉, 그들이 자유주의 국가라면 소극적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법과 제도의 핵심이어야하는데, 소극적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는 적극적 자유는 자유주의 국가에서 절대로 추구될 수 없는 것이냐는 거죠

사실, 이 지점에서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관점과 자유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관점이 구분된다고 보기도 합니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소극적 자유를 최핵심 이념으로 삼기 때문에, 적극적 자유는 원칙적으로 배제돼야한다고 보겠죠

반면, 자유주의 그 자체보단 자유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관점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권리 보호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형태를 살기 위한 필수 수단으로 보는거죠

그럼 그런 삶의 형태가 뭐가 있느냐 물을 수 있겠죠

 

즉, 소극적 자유를 수단으로 삼는 목적은 도대체 뭐냐고 물을 수 있죠

추상적으로 대답하면, "좋은 삶"이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나올 겁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려보시죠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보면, 흔히 중용이라고 불리는 원칙(the doctrine of the mean)에 따라 사는 삶은 덕스러운 사람의 삶이고, 그런 삶이 좋은 삶이죠

그리고 좋은 삶은 바로 행복한 삶이고요

자유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적극적 자유의 관점에서 국가는 시민들이 바로 그런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하는 존재죠

아주 일반적인 예시를 들어보죠

금연정책의 경우, 소극적 자유 개념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죠

내가 담배를 피고 싶어서 담배를 피겠다는데, 국가가 왜 간섭하느냐 물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극적 자유의 관점에서 보면, 담배를 피지 않는 삶, 즉 건강한 삶은 바로 좋은 삶을 구성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국가는 자신의 강제력을 동원해 시민들로 하여금 금연하도록 만들 수 있겠죠

물론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은 존재합니다

가령, 흔히 너징(nudging)이라고 불리는 걸 생각해보죠

우리가 어떤 음식점에 가서 진열돼있는 음식을 사오는 경우를 상상해봅시다

그 경우 만약 관련 법규가 존재해서 건강에 좋은 샐러드 같은 걸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게 만들고, 반면 몸에 안 좋은 튀김들은 가장 안 보이는 곳에 배치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보죠

엄밀히 말하면, 여전히 무엇을 먹을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기에 개인들의 선택의 자유는 간섭을 받지 않았죠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처한 환경은 어떤 삶의 형태 (건강한 삶)를 추구하기에 보다 더 용이한 환경이죠

이런 점에서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가 혼재한 형태의 정책들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죠


3. 공화주의적 자유

그럼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공화주의적 자유를 살펴보죠

공화주의적 자유는 철학보단 사학쪽에서 더 열심히 연구된 것 같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소위 신공화주의(neo-republicanism)가 대두되면서 정치철학과 정치이론 쪽에서도 나름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신공화주의에 기반한 공화주의적 자유의 핵심은 바로 임의적 간섭(arbitrary interference)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노예와 주인을 생각해보죠

우리는 노예가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운이 좋아서 매우 착한 주인을 만났다고 해봅시다

 

그 착한 주인은 노예를 평생동안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보죠

그래서 노예는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을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가 노예인 한, 그가 주인만큼 자유롭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주인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어서 노예의 삶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노예는 지금까지 자신이 꾸려온 삶이 갑자기 흔들리겠죠

이런 가능성은 노예로서 사는 삶에 항상 내재한다고 봐야겠죠

따라서 이 노예는 소극적 자유는 누리지만, 언제든지 지배될 가능성에 노출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점에선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긴 힘들겠죠

한 번 현대적 맥락에서 생각해보죠

독재자가 지배하지만, 사적 영역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생각해봅시다

가령, 나는 내 사업을 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 파트너를 선택해서 결혼할 수 있고, 집도 가질 수 있다고 하죠

나는 그런 사적 삶의 영역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나는 독재자 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 나의 사적 영역에서의 활동이 나를 위협하게 될지 모릅니다

가령, 내 사업이 승승장구했는데, 어느날 독재자의 정책이 불편하다고 비판했다가 그게 독재자의 심기를 건드려서 감옥에 가는 식으로 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겠죠

우리는 그런 삶을 보고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화주의적 자유는 바로 이러한 임의적인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공화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필립 페팃(Philip Pettit)이지만, 근대 공화주의 사상가를 꼽으라면 바로 루소겠죠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첫 문장은 매우 유명하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모두 노예 상태에 빠져있다

그에게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였지만, 사회 계약 이후의 사회 속에서 인간들은 모두 지배(domination) 상태에 빠져있죠

그리고 이 지배의 문제에 대한 대답이 바로 그의 유명한 일반의지(general will)고요

여기서 왜 지배로 인해 상실된 자유에 대한 해법을 의지에서 찾냐고 물을 수 있겠죠

노예나 독재자 밑의 시민의 경우,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내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존재의 의지에 따라 지배된다는 겁니다

내가 나의 의지에 따라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삶이겠죠

하지만 내가 남의 의지에 따라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것은 마냥 자유롭진 않겠죠

루소의 경우, 궁극적으로 나의 의지가 될 수 있는 그런 의지에 따라 내가 지배된다면, 나는 자유롭다고 봅니다

즉, 항상 옳을 수밖에 없는 시민 전체의 의지가 바로 일반 의지고, 나는 설령 지금 당장은 그것이 왜 옳은지 알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게 옳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나는 단지 착각한 것에 불과하게 되는 바로 그런 의지가 일반의지라는 겁니다

이런 일반 의지가 구체적으로 정확히 무엇이냐는 건 논쟁(?)의 대상이기 때문에 저도 잘 모릅니다

20세기 중후반의 마닌(Manin)의 경우는 이런 일반의지를 민주주의와 연결시켜서 숙의(deliberation) 과정을 통해 계몽된 시민들의 의지의 총체라는 방식으로 일반의지를 현대 민주주의로 해석해내기도 하지만,

만약 시민들이 영원히 계몽될 수 없는 존재라면 (정책의 복잡함, 전문성 등의 이유로), 실질적으로 일반의지를 결정하는 건 흔히 말하는 관료(technocrat)나 계몽군주 같은 지배자가 되어버리는 문제가 되겠죠

현실적으로 이런 과두정이나 독재정은 시민들을 자유롭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피지배의 상태로 밀어넣기 때문에, 결국 일반의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했던 루소의 경우 한계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보긴 하죠

결국 다시 신공화주의로 돌아와서 보면, 신공화주의는 어디까지나 정치사상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제공하고 있죠

신공화주의의 핵심은 통치(government)란 궁극적으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지배여야한다는 겁니다

현대의 정치는 매우 복잡해서 시민 개개인이 모든 정책이나 법을 따라갈 수는 없기 때문에, 관료 같은 전문가들이나 정치인 같은 대표자에게 정치과정의 중요한 역할들을 맡길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정이 최종적이면 안된다는거죠

가령, 어떤 정책이나 법, 행정 결정 등에 관해서 시민들이 최소한 이의제기 하고 문제삼고,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한다는거죠

이 점은 달(Dahl)의 민주주의 원칙들과도 부합하는 점이 있고 (정치적 결정은 최종적이어선 안된다는 원칙), 이런 점에서 신공화주의는 루소식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대의민주주의와 잘 부합하는 사상이라고 생각되곤 합니다

반응형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