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플라톤 - 국가
- 생활속으로
- 2020. 12. 23.
일단 제가 이해하고 있기로는 국가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플라톤 나름대로 답을 주고 있는거죠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은 21세기의 정치철학에 약간이라도 익숙하신 분들의 귀엔 약간 어색하게 들릴 겁니다
20세기 후반의 정치철학은 20세기 중반까지의 정치철학하고는 판이하게 달라졌는데요 바로 롤즈 때문입니다
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정치 철학은 철학의 죽은 분야처럼 생각되곤 했지만 롤즈가 정의론에서 정의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새로운 판을 짰죠
그래서 롤즈 이후의 관점에 익숙한 사람에게 오히려 플라톤의 정의론은 약간 '정의'라는 단어를 잘못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낯설 것 같습니다
간단히만 말씀드리면, 롤즈에게 정의 또는 정의의 두 원칙들은 사회의 기본제도들 (헌법, 정치체제 등)을 위한 원칙들이었지만, 플라톤에게 정의란 일종의 도덕적 가치입니다
이 짧은 글에서는 플라톤의 정의론(?)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정하고 그것들 중심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그 특징들은 1) 인간의 영혼 개념, 그리고 2) 인간의 정의로운 상태와 국가의 정의로운 상태 간의 관계 입니다
1.
기독교의 영향력이 커진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래도 영혼이라는 말을 들으면 종교적, 특히 기독교적인 영혼 개념을 떠올리곤 하는데요, '국가'의 맥락에서만 놓고보면 그렇게 거창한 개념으로 영혼을 이해할 필요 없이 일종의 '성격'으로 보시면 됩니다
플라톤은 영혼이 세 부분을 갖는다고 봅니다
욕구, 감정, 이성적인 부분들입니다
욕구적인 부분은 우리가 욕구라고 부르는 것들을 담당하는 부분이죠, 식욕, 성욕, 수면욕 그런 것들이요
감정적인 부분은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것들을 담당하는 부분입니다. 대표적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감정이라든가 분노 같은 것들이 해당하죠
욕구적인 부분과 감정적인 부분은 일종의 심리학적인 논변으로 구분되는데요
어떤 악인의 시체를 봤을 때 우리는 그것이 시체이기 때문에 역겨움을 느끼지만 (욕구), 동시에 그것이 악인이기에 그에 대한 분노를 느끼죠 (감정)
영혼의 한 부분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심리적 현상을 동시에 나타낼 순 없기 때문에 그 둘은 다른 부분이다...이런 식으로 전개됐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성적인 부분은 간단히 말해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입니다
a.
진리를 안다는 게 무엇인지는 국가 7권인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에서 잘 나오죠
말이 나온 김에 아주 간단히 설명드리면, 진리에 관해서 총 4단계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는 단계 ->그 그림자를 만드는 물체를 보는 단계->동굴 밖으로 나와 눈이 부셔서 태양을 직접 보지 못하고 물에 비친 이미지를 보는 단계 -> 태양을 보는 단계
각각의 단계에 대략 대응한다고 하는 것들은
상상 -> 믿음 -> 생각 -> 지식
이런 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략, 상상은 사물의 이미지를 통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이고, 믿음은 눈에 보이는 대상들을 통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생각은 수학적 대상들을 통해 생각하는 것, 그리고 지식은 플라톤식 이데아 (형상/form)를 통해 생각하는 것을 의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보는 존재자들은 모두 변화하는 존재들이기에 불변하는 존재인 이데아보다 열등하고, 따라서 변화하는 존재들에 대해 아는 것은 이데아를 아는 것보다 열등하다고 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성은 바로 궁극적으로 이데아를 알 수 있는 능력이고요
b.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만
말이 나온 김에 이데아가 뭔지 제가 이해한 바로만 간단히 설명해보겠습니다
보통 제가 영어판을 읽을 때 보면, 이데아라고 적지 않고, 형상(form)이라고 이데아를 부르는데요
형상이 뭔지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컵들을 놓고 그것이 '컵'이다, 라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다양하고 변화하는 성질들을 가진 대상들을 한 번에 '하나'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무언가를 우리가 알고 있어야겠죠
그때 그 여러종류의 컵들이 '컵'일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바로 컵들의 형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1) 무한히 다양하게 변형가능한 개별적인 컵에 대해 알아야하느냐, 아니면 2) 그들이 얼마나 다양하든 상관없이 어떤 것이 바로 컵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그 무언가를 알아야하냐 묻는다면,
플라톤은 후자라고 대답하는거죠
c.
다시 영혼의 세 부분으로 돌아와보죠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정의롭다는 것은 바로 각 부분들이 조화로운 상태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조화롭다는 것은 이성적인 부분이 나머지 두 부분을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간단히 생각하면, 우리가 보통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그는 오로지 욕구에 충실하지도 않고, 또 오로지 감정에 충실하지도 않은 사람이겠죠
그는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그 '옳은 바'에 따라 욕구와 감정을 적절히 통제하는 조화로운 성격을 가졌을 겁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을 보고 정신이 건강하다고 한다면, 플라톤이 정의로운 영혼을 건강한 영혼이라고 한 걸 이해할 수 있겠죠
이렇게 세 부분이 조화로운 상태에 놓인 영혼을 가진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2.
플라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국가의 정의로움을 위의 영혼의 정의로움과 연결짓는데요
그에 따르면 국가 또한 세 계급이 있다고 하고, 각 계급은 영혼의 부분들에 대응한다고 봅니다
우선, 욕구 부분에 대응하는 생산계급. 생산을 담당하겠죠
감정 부분에 대응하는 전사 계급. 전사계급은 넓게 보면 지배층인데요, 이성적인 부분이 약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지배자가 될 순 없다고 볼 겁니다
전사들은 이성보단, 명예를 추구하는 감정 등이 중심이 돼서 행동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국가를 다스리기엔 적합하지 않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이성적인 부분에 대응하는 수호자 계급 (guardian이라고 하는데요, 제 기억이 맞다면 전사 계급도 가디언에 들어가지만, 수호자 계급의 변두리 같은 존재로 취급됐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확실친 않네요)
수호자 계급은 간단히 말해, 진리를 알 수 있는 자들입니다
동굴의 비유에서 보면, 동굴의 그림자만 보도록 묶여있다가 탈출해서 태양을 보고온 존재가 있죠
바로 그 사람이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수호자입니다
태양, 곧 진리를 본 자이기 때문이죠
영혼의 정의로움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계급들도 조화로운 상태에 놓일 경우 그 도시는 정의롭다고 합니다
물론 조화로운 상태란 수호자 계급이 나머지 계급들을 통제하는 상태일테고요
결국 진리를 아는 자가 전사 계급과 생산 계급을 통제해서 올바른 길로 국가를 이끌어가는 상태가 가장 정의로운 상태라고 하는거라고 보면 되지 않나 싶네요
3.
제가 너무 단순하게 설명해서 그렇지 플라톤 전문가분들이 보기엔 더 발견할 게 많을 텍스트일 겁니다
가령, 국가(국가론)를 일종의 철학 교육 텍스트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동굴의 비유 부분에서 앎의 여러가지 단계가 나오면서 점점 최종적인 지식으로 향해가는 모습이 그려졌다는 점에서 결국 이건 교육에 관한 텍스트라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수학 교육의 중요성을 논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철학 교육이 왜 중요한지 얘기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나름 여러번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부분은 동굴의 비유에서 보면 자신으로 하여금 동굴벽만 보도록 만들었던 족쇄에서 풀린 사람이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고 다시 동굴로 돌아오는데요 그때 그는 동굴 안이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알게 되고 그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 진짜 세계인지 알려주려고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하죠
근데 여기서 플라톤은 태양을 보고 온 저 사람을 강제로라도 지배계층에 앉혀야 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태양을 보고 온 사람은 굳이 통치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강제력을 써야할 수도 있는데, 그때 그를 설득할 근거 중에 하나가, 국가가 너를 얼마나 잘 먹여살렸는지 생각해보라, 이런 거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그 은혜를 갚으라는 겁니다
(왠지 로크가 떠오르죠)
마지막으로, 국가(국가론)에서 다루는 국가는 현실 속의 아테네가 아닙니다
일종의 이상적인 국가를 상정하고, 그런 이상적인 국가는 어떤 모습이어야하는가를 논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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